개발자와 디자이너는 결코 친해질 수 없을까?

YoonBong Kim
7 min readMay 26, 2016

술을 좀 마셨습니다. 앞으로 서술하는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과 생각임을 우선 밝힙니다.

사회 초년생 시절 저는 회사에서 사고뭉치였습니다. 내가 속한 직군에 대한 발언을 거침없이 하였고 이를 현명하게 사용하질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아파했던 사람도 있었고 여러 충고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시 그 분들에게는 항상 죄송한 마음이지만 후회를 하지는 않습니다. 목소리가 좀 컸었고 더 현명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있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같은 직군 구성원과의 협업보다는 타 직군. 특히, 디자이너와의 협업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가장 많은 갈등이 야기된 직군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고민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 와중에 회사를 휴직하였고 국내가 아닌 북미 스타트업의 일을 프리랜싱 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제가 클라이언트 쪽 디자이너와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한 적은 한 두번 있었지만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피드백은 받아들여졌고 몇 일 후 제 의견이 반영된 새로운 결과물을 받았습니다. 그들 내부에서는 어떤 커뮤니케이션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제 입장에서는 신선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게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결과물 자체도 훌륭하였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업을 했었습니다.

작업이 거의 끝나갈 때쯤 이런 경험을 어찌 내가 잘 이용할 수 있을까란 고민을 했습니다. 하지만 답이 쉽게 도출되지는 않았고 다른 직장으로 이직을 하였습니다.

그 새로운 직장에서는 더 많은 고민이 생겼습니다. 각 직군의 부서가 실 규모였기 때문에 서로 견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좋은 관계를 맺기는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제가 맡은 프로젝트의 디자이너분과는 형, 동생하면서 시작부터 좋은 관계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그 분 역시 제 의견을 잘 경청해줬고 많은 부분 양보해주면서 프로젝트를 수행했습니다.

이 때와 이 전과의 차이는 제 태도였습니다. 디자이너 직군과 개발자 직군은 자부심이 강한 직군이고 또 전문적인 지식 혹은 스킬이 필요한 직군입니다. 제가 일전에 문제를 일으켰을 때 간과했던 부분은 그들을 인정해주지 않았던 점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내 의견을 먼저 어필하기보다는 특정 이슈에 대해 그렇게 한 이유를 묻고 대답을 들은 다음 제 의견을 넌지시 던지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이는 하나의 실험이었고 그 실험은 지금까지 비교적 성공적이었습니다.

물론 이 전략이 통하지 않았던 케이스도 있었습니다. 당장 떠오르는 건 두 번 있었습니다. 감히 평가하건데 상대는 개발직군에 대해서 이유는 모르겠으나 견제를 하고 있을 때 전략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굽히고 들어가도 이 전략은 더 나쁜 결과를 낳았고 서로에 대한 감정만 격해졌습니다.

앱을 개발할 때는 디자이너와 개발자는 각각의 전문성을 잘 녹여야합니다. 각자가 100% 만족은 못하더라도 비교적 만족스러운 결과가 최종 결과물이 됩니다. 갈등은 절대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갈등의 기준이 각자의 욕심이 아닌 하나의 목표, 앱의 품질 향상이라는 한 곳을 바라봤을 때는 비교적 좋은 품질의 결과물이 도출됩니다.

하지만 한 쪽에서 자기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이도저도 아닌 결과물이 도출됩니다. 이는 제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즉, 결과물의 품질은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각자 시소를 타고 있다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여러 회사에서 구인을 할 때 소위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요구합니다. 왜일까요? 저는 클라이언트 개발자다보니 디자이너와 커뮤니케이션을 자주 해야합니다. 자주하는 것이 아닌 자주 해야합니다. 이 커뮤니케이션 스킬은 적어도 제가 이해하기에는 단순히 말을 잘하고 상대 말을 잘 들어주는 태도보다는 시소를 얼마나 잘 타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됩니다. 상대를 견제해야하는 세력이 아닌 동등한 입장에서 많은 갈등을 야기해야하고 이를 통해 서비스 혹은 앱의 품질을 높이되 개인적인 감정은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프로토타이핑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사서 고생한다는 말까지 합니다. 하지만 프로토타이핑은 결과물보다는 디자이너와 손발을 맞추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귀찮고, 회사 입장에서는 시간 낭비가 될 수도 있습니다만 프로토타이핑을 통해 결과물보다도 서로의 직군에 대한 이해도도 넓힐 수 있고 각 구성원의 실력도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또 개발자들 사이에서 하는 말 중에 어설프게 아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최종적으로 아는 척 하는 관리자와 일하는게 가장 두렵다는 말입니다.

조직의 특성상 모두가 절대 평등할 수 없습니다. 의사결정권자는 구성원보다는 위에 있어야 합니다. 물론 수직적인 업무 지시는 구시대적인 유물이 맞습니다만 해당 직군을 대표할 사람은 자기 직군에서 도출되는 결과물과 유관부서와의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꼭 필요합니다. 단, 그런 사람이 자신의 무지는 모른채 자신의 욕심만 추구한다면 그 조직은 그 사람 하나 때문에 유관부서까지 같이 무너집니다.

앱 개발을 하는 입장에서 디자인 부서와의 협업은 긴밀해야 합니다. 일정이 비교적 여유가 있다면 시안을 만들고 아키텍쳐를 구축하기 전에 서로 이해할 수 있고 어느 정도 친밀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야하고, 일정이 촉박하더라도 프로젝트 진행 중에 도출되는 이슈는 서로 많은 의견을 나누고 그 결과를 녹이면서 진행이 되어야 합니다. 즉, 간극을 최대한 줄이는데 노력해야 합니다.

최근 아주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직도 그 사건이 머릿 속을 채우며 다른 일을 못하게 막고 있고 앞에서 나열했던 제 나름대로의 정리와 소신을 한 순간에 무너뜨려버렸습니다.

일개 노동자일 뿐이지만 최소한 지금까지 내가 실험하고 느끼고 경험으로 녹였던 제 나름대로의 소신이 한 순간에 무너졌습니다. 다시 최초로 사회에 나왔을 때 느꼈던 환멸이 온 몸을 휘감고 있고 벗어나려해도 쉬이 벗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잊고 말라고 합니다. 무심코 던진 돌맹이에 개구리가 죽을 수 있는 것처럼 저는 같은 팀원분들보다 큰 내상을 입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초년생 때 저지른 잘못에 대한 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나름 오랜 시간 많은 고민을 통해 각자는 동등한 입장이고 서로를 보완해줘야한다고 믿던 직군에게서 내가 살고 있는 현재가 아직 80년댄가? 난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란 블랙홀에 떠밀려 버렸습니다.

그들에게서 받은 피드백은 “이런 효과 줄거면 없애버려”, “명세 제대로 확인했어?” 란 늬앙스의 피드백 문서를 받았습니다. 소위 갑질을 당했습니다. 일정이 워낙에 부족하다보니 그들의 니즈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제 잘못도 있지만 왜 이런 무시와 갑질을 당해야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대학교 다닐 때 연구실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paint shop이라는 프로그램을 다루면서 이런 저런 효과도 많이 시도해봤고 웹 디자인 관련 책도 섭렵하면서 부단히 노력했지만 결국은 색상을 보는 눈이 부족하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개발자로 돌아섰습니다. 그런 경험 덕분에 최소한 보는 눈은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멋진 앱 한 번 만들어보겠다며 시간만 나면 앱스토어에서 새로 올라온 앱들 설치해서 만져보고 도전요소가 있는 인터렉션 등을 프로토타이핑도 해보고 그렇게 만들어진 지식들을 여기저기 작게나마 적용을 해왔습니다. 여러 갈등을 겪으면서도 그들이 원하는 align, size 등의 이슈에 귀기울이며 최대한 맞춰주고 디자이너가 많이 요구하는 특징들을 코드에 녹이고자 코딩할 때도 자유도를 미리 주기 위해 노력도 부단히 해왔습니다. 그렇게 일을 해왔고 그런 부분이 디테일을 챙겨서 완성도를 높여준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아왔습니다. 제 나름의 장점이라고 부각할 정도로…

참 우울하네요. 내가 지금까지 뭘한건가.. 어떤 분 말대로 일정 때문에 협의를 못한 제 잘못은 인정합니다만 그게 이렇게 무시당할 일인가란 의문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습니다.

토닥거려준 동료들에게는 정말 죄송하지만 안그런척 하지만 전 아직도 코드에 손이 안가는 상황입니다…

다른 클라이언트 개발자 혹은 디자이너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고도화 해왔던 이 일련의 과정들이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나요? 굳게 믿어왔던 제 생각을 바꿔야 할 때인가 진정으로 고민이 됩니다.

이젠 클라이언트 개발을 그만두고 다른 분야로 넘어가야할까란 행동을 해야할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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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Bong Kim

iOS Application Developer and wanting to be Application Planner. I just do like people without any conditions they have. Eager for some knowledge constantly.